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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큐! 소구리!!!"


안녕하세요? 소구리 입니다. 오늘은 10년 전에 소구리가 인터넷을 처음으로 시작 했을 때 추억을 이야기 합니다. 1988년 인지 89년인지 했갈리지만 컴퓨터는 삼보 트라이젬 16비트 XP, 중앙처리 장치로 8086인가 하는 CPU가 장착된 퍼스널 컴퓨터에다 운영체제로 MS-DOS를 사용하고, 동네 컴퓨터 상점에서 구입한 삼보에서 나온 내장형 1,200bps 속도의 다이얼 업 모뎀(modem)을 설치해서 한국 경제신문사에서 운영하던 케털이라는 PC통신에 처음으로 접속 하게 된 것이 소구리가 네트워크와 연결된 최초의 PC통신 입니다. 그 때 기계식 타자기를 쓰다가 롯데케논에서 나온 전자 타이프라이터 쓰고 있었는데 오타 교정도 그렇고 또 글의 수정이나 내용추가가 넘 비효율적이라 그 때 어디서 줏어 들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PC를 이용한 문서 작업을 할려고 PC를 지금은 청개천으로 유명한 동네에 있는 세운상가에서 구입했죠. 도착한 컴퓨터를 설치하고 파워를 켠후 아무리 기다려도 흑백 모니터 화면에 덜렁 반짝거리는 녀석만 뜨기에 좀 당황스러웠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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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커셔라는 것도 명령 프롬프트라는 것도 아무 것도 몰랐지요. 단지 컴을 켜면 문서작성하는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뜨면 타자기 두둘기 듯이 사용하면 된다 정도로 생각 했었는데 무지 난감한 상황에 봉착 했죠^^. 그래도 의지의 한국인은 빠른 시간안에 도스라는 것을 알아내고, 아래아 한글도 찾아내서 설치하고 애초에 의도하던 한글 문서작업을 할 수 있었답니다. 그 아래아 한글 개발자로 알려진 사람이 지금은 드림위즈 대표로 있는 이찬진씨 랍니다. 그 후 도트 프린터도 구입하고... 그러다가 과학잡지에서 컴퓨터로 통신을 할 수 있다를 정보를 접하고 그 당시에 10만원 넘게 주고 모뎀을 구입했죠. 쿠~ 모뎀 구입해 놓고도 ATDT 모뎀 명령어를 판매한 사람도 모르고 구입한 사람도 모르고 해서 난감하였지만 하여튼 명령어를 확인하니 책에서 보던 OK 싸인이 떨어 졌지요. 그 당시 사용했던 통신 에뮬레이터가 이야기 초기 버전인데 아주 간단했죠. 간단하니깐 쓰기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이야기란 피시통신 프로그램 만든 친구들 한동안 인터넷 시대에도 뭐 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소식이 없네요. 아마 PC통신 시대에 이름을 날렸던 많은 프로그래머들은 추억이 되었지만 V3라는 백신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안철수씨는 그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비즈니스해서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성공했지만 하늘소의 이야기는 피시통신 시절의 좋은 추억으로 PC통신 유저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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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등의 피시통신에서 많은 활동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마당에선 몇글자씩 의견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주로 하이텔에서 피시통신을 했는데 그 때 유일하게 가입한 동호회가 고맥인지 맥인지 애플컴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정보를 주고 받았던 동호회 이기도 합니다. 파란 바탕화면에 아이디와 비번 쓰고 접속하면 메인 메뉴들이 나오고 텍스트 명령어들로 게시판에 글도 쓰고 채팅도 하고 하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인터넷도 역동적으로 발전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 때 피시통신에서도 인기 있는 글쟁이들은 소설로도 내고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하였던 것들은 지금도 똑 같이 블로그나 카페라는 형태의 틀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줌마가 음식 만들어 찍어서 올리며 정보를 공유 했는데 인기가 있어서 나중에 책으로 내서 돈도 벌고 잼 있었다. 뭐 이런 류의 사건은 피시통신 시절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단지 그 때는 아줌마가 아닌 젊은 학생층과 컴에 대하여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 좀 많이 알고 많이 사용하던 사람들이 피시통신의 유저 였다는 것 이 좀 다른 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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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러다가 1995년 말에 인터넷이란 소리가 조금씩 피시통신 유저들에게 들려오고 있었죠. 그 해 10월쯤인가 처음으로 인터넷에 우여곡절 끝에 텔넷(Telnet)을 사용하여 외국의 FTP 계정에도 들어가보고, 유닉스 편집기인 피코(pico)도 사용하고 파인(pine)이란 유닉스 메일프로그램으로 하이텔(Hitel)로 인터넷 메일도 보내기도 하고, 고퍼(Gopher)라는 인터넷 폴더 검색기를 사용하여 정보를 찾았고, 요즘도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전문적으로 가꾸는 친구들이 사용하는 FTP도 이용하여 자료를 다운 받았는데, 솔직히 별로 다운 받을 자료도 없었습니다. 단지, 네트워크로 다른 나라의 컴퓨터와 이렇게 자료를 주고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정도의 기술적인 접근을 하였던 시절 입니다. 물론 일부 대학교수나 학생들은 그 때도 학문적 자료를 인터넷을 이용하여 주고 받고 했겠지만 일부 이공계열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렇게 사용하던 시절이 1996년의 인터넷 사용 현황 입니다. 그러다가 월드와이드웹이 모질라라는 브라우저로 그래픽 환경으로 볼 수 있는 WWW 서비스가 한국에서도 일부 피시통신 매니아들 사이에 개인 홈페이지가 만들어 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 때 야후(Yahoo)도 메니아의 수준에서 알려지기 시작 한 해이기도 합니다. 네이버(Naver)나 다음(Daum)이나 그런 서비스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이 1996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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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월에 드뎌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상용 서비스인 코넷(KORNET)을 이용하여 홈페이지 계정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솔농원과 단양팔경" 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광활한 사이버스페이스에 발을 들여 놓았던 것이 오늘의 소구리 하우스가 되고 "소구리 문화지도"가 되고 하였겠죠. 그 당시에 삼성이나 현대 같은 국내 최대 기업의 홈페이도 없었고 몇 개의 대학을 제외하곤 홈페이지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니 솔농원과 단양팔경(soback.kornet.net/~jinfilm) 홈페이지가 꽤 시대를 앞서간 홈페이지 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이랍니다. 그 것도 최첨단 사이버에 농사 짓는 집을 앞세우고 진출 했으니 약간의 관심은 받았고, 또 좋은 친구들이 꽤 많이 놀러 오기도 하였던 홈페이지로 운영되다가 딱 10년을 채우고 2006년 8월에 문을 닫고 "소구리 하우스"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10년 동안 20메가 계정을 한 달에 2만원 정도의 돈 주고 운영한 보람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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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런 힘들이 밑바탕이 되어 대한민국은 인터넷 인프라 구축과 이용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모델이 되어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쳐 대한민국 사회의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것이 인터넷 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랍니다. 1996년 한국통신 전용인터넷 회선인 CO-LAN (공중기업통신망)을 집에 설치할 때 전화국 설치 기사도 그게 솔직히 뭐 하는 건지 몰라서 외장형 Co_Lan 모뎀하고 연결 케이블만 놓고가서(솔직히 잘 모른다고 그래서 제가 하겠다고 했죠^^) 전화통 붙잡고 영동 전화국인지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회선 엔지니어와 전화통 붙들고 제가 직접 설치해서 개통했다면 말 다 한 거 아니겠습니까? 쿠쿠~ 그 것도 피시(PC)도 아닌 맥(MAC)에다 갖다 붙이려니 막막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해결해서 모뎀(MODEM)이 아닌 전용선 인터넷 회선으로 넷스케이프의 별똥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한 달에 19,000bps 속도로 7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인터넷을 24시간 풀로 연결되게 되었으니 정말 그 땐 대학교의 인터넷 시설이 안 부러울 때 였기도 했습니다. 그 속도란 것이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메가패스의 10분의 1정도의 속도 였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 만치 않아서 인지 몰라도 체감 속도는 상당히 빨랐습니다. 그 당시 다이얼업 모뎀의 속도는 대략 32,000bps 정도가 일반화 되어 있던 시절인데 전화비가 만만치 않게 나오던 시절 이기도 합니다. 01414... 지금도 다이알 업 모뎀으로 코넷에 접속하는 번호로 사용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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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7년... 대한민국에선 인터넷 속도 때문에 힘든 지역은 3%이내가 되었지요. 그 모든 것이 "전신주 사나이"와 같은 대한민국 전기통신맨들이 있었기에 가능 하였 겠지요. 요즘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이 속도 가지고 막 뭐라고 그러지만 우리나라는 인터넷 인프라는 아직도 실질적으로 세계 최고의 시설과 인적 자원으로 운영되는 행복한 환경 임도 알았으면 합니다. 절대 기준이 없다 보니 무조건 느리다고 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인터넷 환경에 대하여 모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이야기들 합니다. 아직도 소구리 문화지도에 윈도98이나 익스플로러 5.0대 버전으로 접속하는 외국 친구들이(우리가 선진국이라 칭하는 나라들임) 다이얼업 모뎀으로 접속하기도 한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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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소구리 하우스의 개략적인 역사를 이야기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문화 인프라의 한 축을 구축하며 존재하는 소구리 문화지도를 만들어 가면서 솔농원과 단양팔경 홈페이지의 서정을 계승하는 사이트에다 추억을 이야기 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합니다. 지금 까지 그래 왔지만 인터넷은 좋은 친구들 이 만들어가는 자율적인 질서 속에 긍정의 미소로 세상을 향한 소통의 공간이자 삶을 공유하는 일상으로 정체되지 않고 가꾸어 지겠지요. 광활한 사이버스페이스의 한 켠에 자리잡았던 작은 초막에서 고향의 서정과 자연이 있던 곳 "솔농원과 단양팔경" 홈페이지는 한국 인터넷 역사의 한 페이지로, 좋은 친구들의 추억으로 영원히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소구리 홈에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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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 요즘 개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서 하는 말은 아니랍니다. 컴퓨터 파일 정리하다가 우연찮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2항 조문을 무엇에 써먹으려고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잡동사니 폴더 속에 있었습니다. 쿠~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제1조를 잡동사니 폴더에 보관했으니 그리 쓸모 있는 파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__* 그래도 오늘은 대한민국 헌법에 대하여 한 번쯤 되새겨 보는 계기를 마련해준 이미지 파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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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원리는 간단하죠. 사람들이 모여서 이렇게 살자는 약속을 정해 놓은 삶의 규칙이죠. 헌법이라고 뭐 고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시대에 따라서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면 수천 번도 고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입니다. 국민 투표해서 가결되면 새로운 헌법을 써먹으면 되니깐 뭐 혼란이 온다 뭐 어쩐다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에게 헌법개정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물어보면 땡이죠. 그거 물어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지고 논쟁할 필요도 없죠. 따지고 보면 말입니다.^^ 법대로 국민투표에 붙이고 헌법 제1조 2항에 나와 있는 권력의 원천이자 주권자의 국민한테 물어보면 아주 명확하고 쉽게 결정 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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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종신 집권의 목적으로 국민의 뜻에 반하여 유신헌법을 온갖 악질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체육관에서 대통령 뽑기 헌법으로 교체 했었던 게 70년대 초반 입니다. 그 때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이 30년이 흐른 후에 다시 열린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생명을 사법의 이름으로 종신집권을 꿈꾸던 박정희 정권이 잡았다는 그 역사적 사실은 영원히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불구경 하듯이 그런 문제를 바라보면 결국 언젠가는 당대에 자신과 후대의 손자 손녀들이 사법살인으로 죽을지 모르기 때문 입니다. 자신의 일이 아닌 남에 일이니깐 쉽게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 그 정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뜨거운 맛을 볼 수 있음을 자각 했으면 합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미래세대를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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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 1항과 2항은 무지 중요 합니다. 그 것 만으로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국민의 삶과 행복을 스스로 결정 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민주공화국의 권력은 정치인들이나 군대나 행정부, 사법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국민의 1표가 모여서 무엇 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사법부가 썩었다고 생각하면 국회의원 뽑을 때 사법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추진하는 인물로 국회의원 뽑으면 게임은 끝납니다. 검찰이나 경찰, 군대의 조직도 국민이 직접 통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게 당신의 1표 입니다. 또 현대 민주주의는 국민직접 통제의 원리를 가능하면 많이 써먹자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반 국민이 직접재판에 참여하면 사법권력의 부패와 권력집단화를 예방하는 측면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도 합니다. 법도 국민의 지혜가 모여서 만든 상식의 규칙 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에 일반 국민이 재판에 참여해도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짜 사법부가 썩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면 내년 총선에서 지역에 따라 썩은 준치라도 좋다고 뽑아주는 지역주의 정치형태는 버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썩은 준치가 아니라 올바른 정책과 사회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혹시라도 있다면 그런 사람 국회의원으로 뽑아 줍시다. 지연, 학연, 금력 보고 뽑아줘 봤자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물론 소수의 기득권을 위한 로비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무능력 한 게  현 정치판의 이면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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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절대 다수가 긍정의 미소로 바라보는 개정된 사학법에 대하여 정치판에서 돌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모습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재 개정하자는 당의 국회의원들도 결국 국민들이 뽑아준 정치인들 입니다. 쿠~ 다 아는 거 쓰다 보니 이야기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__* 아무튼, 헌법에 명시된 입법기관인 국회는 법을 만들고 고치고하는 기관인데 썩어빠진 지역감정 정치에 의하여 그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일꾼들을 뽑지 말고 좀더 큰 사회적 대의를 갖고 소중한 주권을 행사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선 충청북도에 사는 유권자들의 투표형태는 그 나마 칭찬해줘도 누가 아무도 뭐라고 그러지 않겠죠? 지금 무슨 소리하는가는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 당의 의석 비율을 살펴보면 그 나마 충북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을 중용의 미로 평가하는 지에 대한 답이 나온 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유권자들의 싹 쓰리 선택은 정말이지 부끄러운 기록으로 후세에 기록 될지도 모르겠지요. 이런 이야기 하면 시간낭비지만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정말 부끄러운 현상 입니다. 예전에는 총칼과  고문 앞에 어찌 할 수 없었다는 변명이라도 통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유권자들이 선택한 결과는 역사적 책임 앞에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대한민국 헌법 첫 머리를 보니깐 참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 갑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지금보다 변화의 속도가 무지 빠르게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국민의 선택이 적용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입니다. 수 많은 네트즌, 수 많은 블로그, 수 많은 동영상들이 융합되어 대한민국의 삶에 패러다임은 만들어지고 있겠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소구리 좋은세상 만들기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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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이야기"


학명: Hyla japonica gunther
이름: 청개구리 - tree frog


청개구리는 개구리과에 속하는 몸길이는 2.5~4cm 정도 자라는 작은 개구리이다. 전국적으로 서식하고 있으며 풀섶이나 활엽수가 주 생할근거지 이다. 등부분은 초록색을 띠고 지역과 주변환경에 따라 생상은 변화가 있다. 청개구리는 썩은 나무의 틈새나 땅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산란은 5월에 논이나 개울 또는 웅덩이에서 이루어지며 알의 지름은 1mm 정도로 작다. 수컷의 특징은 턱밑에 주름주머니가 있어 비가 오기 전후로 주름주머니에 들어있는 공기를 이용하여 소리를 낸다. 청개구리는 민가에도 곧 잘 나타나서 집안으로 들어와 물기가 있는 화장실 등에서 목격 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청개구리에 대한 효와 관련한 슬프고 애뜻 한 설화가 있어서 그런지 다른 개구리와 양서류에 비해서 친근성이 있어 청개구리를 잡거나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지 않는 문화적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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