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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학강산 밭으로 가는 농로를 보수하는 굴삭기

2007년 2월 24일 한 동안 사람의 통행이 불가능 할 정도로 가시덤불과 잡풀로 우거졌던 학강산 밭 농로를 굴삭기로 보수하고 있습니다. 그 도로를 보수하는 포크레인을 바랍 보면서  만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눈발이 휘날리는 학강산 농로를 만들던 때가 떠오릅니다. 온 식구들이 총 출동하여 삽과 곡괭이로 그 길을 경운기가 올라갈 정도로 넓히는 농로개설 작업입니다. 그 때 고란에 큰 아제도 와서 힘을 보탰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의지의 한국인 솔농원 사람들이야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앞재넘어 밭으로 가는 농로도 삽과 곡괭이로 뚫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그 작업에 모두 참여했던 나의 모습이 지금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추억으로만 기억되니 물처럼 바람처럼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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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강산 밭 앞재 넘어 밭 잔등 넘어 밭.... 모두 경운기 몰고 담배 실어 날랐던 정들었던 영농의 현장이었습니다. 경운기 다음에는 농촌형 다목적 1톤 화물차인 세레스(Ceres)로 그 길을 꽤 오랜시간 동안 함께 했습니다. 겨울철에 훈형과 6마력짜리 경운기 운전하며 학강산 삼판 때 모아 두었던 잡목을 눈길을 헤치며 올라가서 실어 날랐던 기억들도 떠오르고, 잔등 넘어 밭에서 아랫마을 아저씨네 고추포대를 경운기로 싣고 내려오다가 자칫하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던 순간은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고 꿈에서도 나타나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때 경운기 뒷 브레이크가 시원치 않아서 비탈길 탄력을 브레이크가 이겨내지 못해서 생긴 사고입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그래도 클러치 잡고 남의 묘 등에 간신히 멈춰 서게 한 순간들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묘 등을 넘으면 50여 미터 급경사면이 나타납니다. 그 때 경운기랑 함께 굴렀다면 지금 이러고 있지도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찰나의 악몽이 아주 가끔씩 나타나서 식은땀을 선물도 하지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경운기와 세레스로 담배와 농산물 운반에서 큰 사고 없이 단양 땅을 누볐던 베테랑 영농기계 기사이기도 합니다. 쿠쿠~ 트랙터로 비탈면 갈 때도 넘어질 것 같아서 등골이 오싹 할 때도 있기도 합니다. 실지 트랙터가 논둑에서 떨어지거나 경사지 로터리나 쟁기 작업시 굴러서 죽는 농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만큼 산촌의 영농은 때로는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2007년 2월 24일 학강산 농로 재작업은 학강산 밭 자락에 학운산방이 건축으로 진입로 및 공사용 자동차 통행을 위하여 재공사 하고 있습니다. 학강산 밭은 벌써 여러해 전 부터 묵밭으로 칡덩굴이 무성한 산으로 변한 밭이기도 합니다. 그 곳에 솔농원 둘째 아들 훈형이 학운산방을 만들어 당분간 주말농장으로 사용하다가 은퇴 후 귀거래사로 만날 것 같기도 합니다.

추억을 위하여...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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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어머님 학강산 할머니 묘소에서 시어머님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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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뒷 목재 에서 바라본 솔농원 겨울 1987